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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ri - 7224

묘호(廟號)는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황제 또는 국왕과 같은 군주에게만 붙인 명칭으로 원래는 태묘(太廟, 또는 종묘)에서 군주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칭호이다. 두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앞에는 시호법에 따라 군주의 치세와 업적을 뜻하는 글자인 시자(諡字)와 뒤에는 ‘조’(祖) 또는 ‘종’(宗)을 붙이는 종호(宗號)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묘호는 개국 군주와 같이 공과 업적이 큰 소수의 군주들에게 주로 붙였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왕조인 상대에서 한대까지는 묘호를 가진 군주가 많지 않았으나, 점차 모든 군주들의 위패를 태묘에 모시면서 일반화되어 중국 당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군주에게 붙여졌다. 이로 인해 당나라 이후 중국의 군주는 글자 수가 많고 복잡한 시호 대신 묘호로 주로 알려져 있다.[1] 또한 후대 왕조에 들어설수록 선조들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일환으로 점차 남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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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廟號)는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황제 또는 국왕과 같은 군주에게만 붙인 명칭으로 원래는 태묘(太廟, 또는 종묘)에서 군주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칭호이다. 두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앞에는 시호법에 따라 군주의 치세와 업적을 뜻하는 글자인 시자(諡字)와 뒤에는 ‘조’(祖) 또는 ‘종’(宗)을 붙이는 종호(宗號)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묘호는 개국 군주와 같이 공과 업적이 큰 소수의 군주들에게 주로 붙였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왕조인 상대에서 한대까지는 묘호를 가진 군주가 많지 않았으나, 점차 모든 군주들의 위패를 태묘에 모시면서 일반화되어 중국 당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군주에게 붙여졌다. 이로 인해 당나라 이후 중국의 군주는 글자 수가 많고 복잡한 시호 대신 묘호로 주로 알려져 있다.[1] 또한 후대 왕조에 들어설수록 선조들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일환으로 점차 남발되었다.

한국의 경우, 삼국 시대 때 묘호에서 본딴 호칭이 더러 사용되었으나 엄연하게는 존호나 시호에 가까웠다. 그러나 통일신라 시대에 제후국의 종묘 제도인 오묘제(五廟制)가 확립된 이래 고려 시대 때 본격적으로 묘호와 종법 제도가 전래되었다. 이후 원나라의 내정 간섭으로 묘호를 올리지 못하고 이전에 재위한 군주들 역시 모두 낮추어 불렀다가 조선 시대 때 다시 쓰였다. 조선에 이르러서는 묘호의 원래 취지를 상실하고 후대 왕들이 선왕에게 높은 묘호를 올려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